에르메상스, 뮤게 포슬렝. 오래간만의 은방울꽃 향수. 호박에 줄긋기


뮤게, 릴리 오브 더 밸리. 은방울꽃.
이미 십대 중후반에 엄마 화장대에서 들고 나온 디오리시모 퍼퓸(!!!)을 찍어 바르고 학교 다니던 인간이 백만년만에 은방을꽃 향수가 나왔다는데 가만 있을수가 있나. 당장 달려나가 모셔왔다.

조향사는 장 끌로드 엘레나. 에르메스 전속으로 활동하신다는데 향수 좋아하시는 분들 사이에선 이양반 팬층이 꽤 두텁다. 선호도는 조금 갈릴 수 있겠지만 누구에게도 망작은 아닌 향수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만은, 개인적으론 에르메상스 라인 향수들이 향은 잘 빠졌는데 지속력들이 다들 망...이라고 생각해서 그동안 따로 돈주고 산 제품은 없었다. 그 좋다는 TDC의 쉬블림 발키스 마저도 그닥 내 체향과 상성이 좋은 편은 아니라...

하여간. 뮤게 포슬렝 이건 전반적으로는 깔끔한 은방울꽃 절반에 풀냄새 쁘라스 알파... 인데 그 '쁘라스 알파'가 뭔지는 며칠째 고민해보고 있는 중이다. 예 뭐 은방울꽃이 굉장히 청순하고 깔끔하고 한편으로는 날카로울 정도로 쌔한 느낌도 있는 향을 내는데, 그냥 청순한척 여리한척 하는 은방울꽃에, 거기에 더해진 뭔가가 되게 이 느낌을 부드럽게 중화시켜주고 있는 것도 맞고 한데, 그게 뭔지는 진짜 잘 모르겠는데(홈페이지에도 따로 언급은 없다) 요 향수 탑노트의 첫인상이 뭔가 묘하게 친숙한게 무언가가 떠오를락 말락...싶어서 한창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난게,


'메로나'

... 메로나 혹은 메론향 가향아이템 먹어본게 하도 오래간만이라 떠올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냥 메론이라고만 하기엔 뭔가 되게 미끌미끌한 느낌이 섞여있어서. 아니 진짜 그놈의 쁘라스 알파가 뭐길래....


다행히 메로나 느낌이 처음만큼 진하게 쭉 가는건 아니고;;; 메로나에 뒤이어 은방울꽃이 좀 더 깔끔하게 올라오긴 한다. 그리고 미끈미끈한 은방울꽃 반, 메론느낌나는 풀떼기 반의 느낌이 쭉 이어짐. 에르메상스 라인 답게 지속력은 별 의미 없고-옷에 뿌려도 몇시간 못간다-. 여름에도 깔끔하게 쓸만한 향이긴 하고. 나야 워낙 은방울꽃 좋아하는 사람이라 아예 들고다니면서 향 다 날아갔다 싶을때 또 뿌리고 뿌리고 뿌리고 하면서 쓸 생각으로 아예 트래블사이즈로 사오기도 했지만. (100ml는 들고 다닐 자신도 다 쓸 자신도 없다...) 모든 향수가 마찬가지지만 이것도 시향은 필수. 내 장담하는데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뿌린 다음에 '이가격에 메로나 향수라니!'하면서 입에서 불을 뿜을 사람 분명히 나올 것이다.(....) 향수를 이것저것 쓰다보면,ㅎ 가끔 이렇게 의외의 결과를 내는 조합이 있긴 하지...

사실 은방울꽃은 워낙 비싼 꽃이라, 몇년간 꽃시장에 짬짬히 출입하면서도 실제로 사온 경험은 딱 한번뿐이다. 정확한 가격은 까먹었지만 하여간 역대 나의 꽃쇼핑 중에서 최고가를 찍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ㅎㅎㅎ 워낙 소량만 수입해오기 때문에 이 꽃이 들어오면 바로 비싼 꽃집으로 직행하지(그러니까, 거의 주문 수량에 맞춰 수입하는것에 가깝다고..), 어지간해선 꽃시장같은데까지 잘 나오지도 않는다 카더라. 은방울꽃의 실제 꽃향기는 히아신스 뺨칠 정도로 주변에 강하게 퍼지는데, 의외로 이 청초하고 싸늘한데 힘까지 넘치는 이 향기가 생화에서 오일 형태로 추출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향은 인위적으로 합성해 만들어낸다고 한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실제의 은방울꽃 꽃향기는 사실 어지간한 방향제 정도는 가볍게 찜쪄먹을 정도라 생화의 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요 뮤게 포슬렝은 사실, 매우 미흡하다 못해 그냥 다른 향수라고 치는게 맞긴 하다. 물론 향수가 생화의 재현만이 목표인건 아니지만.(니가 그리 애정하는 디오리시모가 그럼 생화향 재현은 좀 똑바로 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또 절대로 아니고요.)

이것도 정말 과감하게 몇만원 들여 사온 한단-대여섯 줄기? 정도-이고,
(구매 당일, 우리집 부엌과 거실의 향을 완전히 장악했다)

보통은 미들턴이나 고소영의 부케 사진으로 보지 않았을까...
줄기 자체도 짧기 때문에 다른 꽃과 섞어 볼륨을 키우기도 쉽지 않겠지. 까다로운것.
그나저나 저게 꽃값만 모두 얼마어치야....-_;;;;


하여간 기억속의 은방울꽃 향기와 오랜기간 애정하는 디오리시모랑 비교했을땐, 디오리시모가 워낙 첫인상이 진하고 싸늘한 향수라(대신 사람과 날씨에 따라 청초한 꽃향기와 방향제와 에프킬라 사이를 오간다. 그래서 남에게 함부로 추천은 못함.) 은방울꽃으로는 훨씬 더 강하게 코를 후려치는 대신 마지막까지도 싸하게 살짝 암모니아같은 느낌을 풍기고 사라지는데 요 뮤게 포슬렝에는 그런 싸늘한 느낌은 아예 없다. 뭐 그냥 아예 부드럽고 매끈하게 청초하게-를 목표로 다듬어진 탓이려니...싶긴 한데. 그 대신이랄까 탑노트가 메로나지만;;;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자꾸 메로나를 떠올리게 되는게 함정이지만;) 어찌되었건간에 은방울꽃 향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오래간만에 나온 은방울꽃 메인의 향수라는 점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다. 에르메상스 라인의 향수답게 지속력은 포기하는게 마음이 편하고 꽃 삼분지 일에 풀떼기 삼분지 일, 쁘라스 알파가 생화의 날카로움은 아예 날려먹고 미끈하게 다듬어놨다는 점만 잊어먹지 않으면, 두루 쓰기에는 무난한 향수이다. 좀 여러번 뿌려도 주변에서 욕은 안먹을만한... 아마도 진짜 은방울꽃향과 다른 은방울꽃향 향수를 모른다면 청순한 느낌으로 막 뿌려가며 쓰기 좋겠지. 그만큼 어리고 예쁜 이미지는 있다. 

* 개인적인 은방울꽃 향수의 기본은 디오리시모. 앞서도 언급했지만 사람과 날씨에 따라 날카롭고 청초한 꽃향기와 방향제와 에프킬라 사이를 오간다. 첫인상은 예쁘지만 날카롭고 사나운 미인의 느낌. 미들노트의 은방울꽃 자체는 뭐 걍 은은하고... 은방울꽃 생화에 그렇게 가깝다고들 하는 아닉구딸의 뮤게는 묘하게 아직 연이 안닿았고(위시리스트에는 있는데 기회가 되면 계속 다른걸 사게 된다), 일년에 딱 하루만 판다는 겔랑 뮤게는 뭐 살다보면 한번쯤 써볼 날이 오겠지. 가격이 좀 자비없긴 한데 요즘 이상한거 질러 제끼는 꼴을 보면 아마 기회가 닿으면 이것도 한번쯤 지를법도 하긴 해서... 펜할리곤스의 릴리 오브 더 밸리와 바이레도의 인플로레상스는 조향목록에 은방울꽃이 들어가 있고 분명 티는 나긴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걍 예쁘게 뽑아놓은 꽃향수-정도로 치고 있다.

* 포스팅도 습관이어라... 요즘 워낙 블로그를 안해버릇하니 가끔 새글을 끄적대기도 하는데 정작 다 쓰거나 올리거나 한 건 없고 임시저장글만 몇 개 쌓이고...



덧글

  • 썬고미 2016/06/01 22:56 # 답글

    펜할 릴리 오브 더 밸리는 갈수록 그냥 허브느낌이 완연하더라고요. 은방울꽃 향이 이랬던가 한참을 생각했습죠. 인플로레상스에 은방울꽃이 들어가는군요. 이건 향도 기억이 안나서 언제 다시 시향하러 가봐야겠네요.

    메로나하니까 입생에 블랙 오피움 처음 나왔을 때 향 설명해달라니까 우리 직원들끼리는 마이츄 향으로 부르고 있어요. 했던 게 기억 납니다.
  • mazarine 2016/06/02 11:04 #

    아... 정말 달달함이 확 와닿는 설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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